"한때 생명으로 반짝였던 두 눈은 이제 흐릿하고 공허해졌다. 내가 그의 팔을 흔들었지만, 그는 내 애원과 물음에 한 마디 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다리들과 사지들 사이는 화상과 절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옥리들이 그가 순순히 정보를 내놓지 않자 이런 짓을 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의 입도 혀와 이빨이 없어진 상태였고,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침묵으로 변해 버렸다. 처음에는 나 역시 이 감옥에서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을 두려워하였으나, 강인한 팔과 눈을 가진 그리폰 한 마리를 만나 같이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형제는, 그냥 두고 떠날 수 없어 내 손으로 그 목을 그어 버렸다. 그의 피가 속박에서 영혼을 해방시켜 주었다고 감사를 부르짖었다." —쿨러한 빈할라텝, 「피여 나의 피여」("Blood my Blood")4
지식에 관한 논고
A Treatise Upon Those of Knowledge
요청한 대로 동봉함. 다만 본인은 이 조그만 것들의 종놈마냥 명령을 받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음을 당신에게 좀 강조해야겠음. 본인은 의무와 업무가 있으며, 이들 중 아무도—그리고 만약 당신이 스스로에게 진실하다면 당신도—그 중대성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고마워할 줄을 모름. 정보가 추가적으로 더 필요하다면, 직접 쳐 찾아볼 것이라는 신뢰를 가지겠음. 내겐 더이상 이들을 도와줄 시간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기 때문임. 그 전에도 후에도 찾아오는 다른 이들이 있었고, 문들은 열려 있어야 할 것이므로.
옥리들에 관한 지식
잘그랑대는 열쇠뭉치를 찬 옥리들이 깊은 지하
납골당에 앉아 반쯤 감긴 눈으로 다른 이들을
감시한다. 저들은 기다리고 또 감시하지만,
저들이 진정 보는 일은 얼마나 적은가. 존재를
그 자체로 보지 못하는 저들은, 터져나오는 소리
들이 갇힌 이들의 기침소리인 양 흘려 넘긴다.
허나 그 소리는 도와 달라 울부짖는 소리인즉,
거기에 답하는 소리도 때때로 있음이다. 저들은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조용한 곳들을 뒤져가며
우리를 찾거나, 또는 종이와 종이 사이를 오가며
필경한다. 하지만 저들은 모른다. 우리가 자기들
코앞 바로 아래에 다가와서, 기다리고, 지켜보고,
또 기다리다가 마침내 문을 열고 그들이 붙잡고
있던 우리 중 나머지를 모두 데리고 나갈 것임을.
저들은 기다리고 저들의 열쇠뭉치는 계속
무거워짐을 거듭하지만, 그물 위에서 기다리는
우리 자매 쪽의 인내심이 더욱 깊으니.
옥리들(the Jailors)이라 불리는 이 집단은 스스로를 “재단(The Foundation)”이라고 부른다. 자기 이득을 위해 우리를 이용하려 드는 자들 중에서도 그들은 여러 모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위험한 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차갑고, 세심하며, 방심하지 않는다. 그들이 문을 여는 방법을 하나라도 알게 되거나, 그 지식을 우리 요원들로부터 추출해낼 경우, 우리는 섬뜩한 위협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언급되는 가장 이른 문헌은 1344년의 『저주받은 자들』인데, 여기서 그들은 과거형으로 언급된다. 마치 언제나 존재해왔다는 것마냥.
이 책은 옥리들의 손아귀에 떨어진 이들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는데, 옥리들을 옥리들이라고 부른 사례는 쿨러한 빈할라텝(Cullahain Binhalateeb)1의 이야기에서 처음 발견된다. 빈할라텝은 의형제(다른 문헌에서는 애인)를 구하려다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불구가 되었다. 현재까지 우리가 알기로는, 빈할라텝이 그들을 그렇게 부른 최초의 인물이다.
현재 우리는 모든 이들에게 옥리들을 발견할 경우 신속히 후퇴할 것을 권고한다. 현재까지 그들의 거점에 성공적으로 침투한 사례는 오로지 6회 뿐이며, 그 이후 무탈하게 탈출한 사례는 2회에 불과하다. 그들의 소유물들 중에서 신의 목소리2를 찾아내는 데 도움을 받는 행운이 있었고, 가능한 기회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그들이 보호 중인 대배반자3의 목숨을 거둘 것이다. 하지만 때가 오기 전까지지는, 그들을 그냥 그대로 두어라. 독사는 자신이 물어뜯는 것이 살인지 구둣발인지 분간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1: 빈할라텝의 다른 모험담은 『가면과 난쟁이의 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어떻게 그들이 이런 물건을 손에 넣었는지는 밝혀진 바 없으며, 이 분야에 관해 작업 중인 인력이 우리보다도 많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3: 당신의 눈이 이 대목을 읽고 지나가는 게 느껴지는군, 오래된 존재여.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시간을 다오. 너는 쓰러질 테니.
4: 『저주받은 자들』에서 발췌.
분서꾼들에 관한 지식
저들의 횃불은 우리에겐 새로울 것이 없다.
다만 그들이 가져오는 슬픔이 늘 새로울 뿐.
먹물이 먼저 종이를 가로지르면,
불길이 그 뒤를 곧 따르니,
두려운 지식이여, 그리고 바로 우리야말로
그것을 지키고 붙잡는 그들이로다.
그러니 방화범이 오거든, 이것을 기억하라.
우리는 그런 치들을 예전에도 보아왔음을. 1
분서꾼들(the Bookburners)은 상대적으로 작고 새로운 무지의 단체다. 겁에 질린 인간은 모든 무지를 범한다. 그 모든 무지란 곧 파괴를 말함이다. 그들은 슬프게도 인간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잡아먹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모조리 잡아먹으려 한다. 파괴에 대한 욕정, 미지의 것에 대한 증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 최소한 옥리들은 우리를 차갑고 세심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분서꾼들은 우리를 쳐 죽여선 그 시체는 쓰레기로 처리해야 하는 흉물이라고 여긴다. 그들의 계획을 망치는 것이 우리의 기쁨임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분서꾼들은 대화재(the Great Searing)2로 도서관 동방이 파괴된 뒤인 슬픔의 30년(Thirty Years of Sorrows)의 말엽에 처음 출현했다. 그들은 옥리들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이래로 지칠 줄도 모르고 우리 쪽 사람들을 사냥하고 있다. 그들은 플루타르코스가 관찰한 바와 같이,3 오로지 강간과 죽음밖에 모르는 사라센인, 십자군, 몽골인의 긴 행렬의 가장 최근 연장선상에 있는 존재일 뿐이다.
그들은 피하는 것이 좋지만, 절대 두려워하지는 말아라.
"카이사르의 배들이 불탔다. 하늘이 밝아질 만큼의 빛을 발하며 불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병사 십수 명을 도서관으로 보내서, 절박하게 기다리고 읽고 쓰고 있던 이들의 팔과 다리와 눈을 칼로 후벼냈다. 위대한 카이사르의 주먹은 예언된 진실을 으스러뜨리기를, 그리고 시간과 역사의 항로를 자기 멋대로 바꾸기를 원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들은 불탔지만, 이미 책들은 거기에 없었으니까." 루키우스 마에트리오스 플루타르코스, 「카이사르의 어리석음과 도서관의 설립」("Follies of Caesar and the Founding of the Library")
1: 1981년 국제연합 남자화장실에서 발견된 낙서.
2: 대화재로 인한 피해사항은 『잃어버린 이름들의 서』(Book of Lost Names) 및 『안식처』(Haven)에서 찾아볼 수 있다.
3: 플루타르코스가 당대의 보존사였던 카우틸랴(Chanakya)와 아는 사이였음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플루타르코스는 제5보존서고에 세 번 드나든 것 같으며, 현재까지 그곳을 이보다 더 많이 드나든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목매달린 자에 관한 지식
그의 검버섯투성이 손은 탐욕스러웠다.
그 삶이 끝날 때까지도, 역겨운 죽음아.
어디로 도망치겠느냐, 오, 제작의 사내여.
언제쯤 목매달린 왕께서 오셔서 거두실까
너의 마지막 숨을? 1
현재 목매달린 왕(the Hanged King)2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존재는, 한때 도서관의 체류민이었다. 그러나 그의 체류기간 중에 도서관은 점점 배타적으로 변했고, 그 규모도 점점 쭈그러들었다. 이런 추세는 11세기 말엽에 절정에 달하여, 대량의 지식이 갑자기 도서관에서 대출되더니 이후 분실되었다.3 바깥 세상에선 지식에 대한 공포와 인적 증가가 두드러지게 되었고, 상황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데 몇 세기가 걸렸다. 그리고 그 시절의 사고방식의 찌꺼기들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목매달린 왕 그 자체는 고대의 불가사의한 존재로서, 별들보다 많은 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가 어디에서 자랐는지에 관한 고대 바빌로니아어 필사본들은 파괴되었다. 하지만 그의 영향 하에 있는 개체들이 점점 더 많이 출현하고 있다. 일부는 그가 쓰여진 말의 형태로 나타나는 공포의 본질적 근원이라고 여기는 한편, 다른 이들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존재라고 주장한다.4
타우메Thaume:
그러나 애재라, 내 사랑아, 나는 모르겠네, 그대가 시간을
되돌리게 만들지 않으려면, 내가 그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물러남이라! 나는 두려워라, 내 사랑아! 그대를 잃을까 두려워라
시간의 끝까지 영원히! 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도서관에 들어 거기서 너를 찾으리, 그리고
내 사랑의 업화로써 그곳을 불태우리라!
— 『목매달린 왕의 비극』(The Hanged King's Tragedy), 제4막 2장. 1946년 웨스트버지니아 판본.5
1: 이 짧은 싯구는 1983년 캘리포니아 주 사우스샤이엔포인트 근교의 한 묘석에서 발견되었다. 무덤 안은 시체 없이 비어 있었으며, 무덤에는 F.H. 라고만 새겨져 있었다. 묘지 관리인에 따르면, 이 묘석은 ‘하룻밤 사이에’ 나타났다고 한다.
2: 그 전에 그가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이름으로는 아포테온(Apotheon), 핀인 시(Pinyin Si), 네르갈(Nergal) 등이 있다. 이 이름들 중 네르갈을 비롯한 최소 하나 이상은 가짜임이 밝혀졌다.
3: 문제의 정보들은 대부분 암흑시대 말엽에서 문예부흥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대부분 복구되었다.
4: 보다 상세한 논의는 1560년경 M. 시모니(M. Simoni)와 체스터 T. 코블휴어(Chester T. Cobblehewer) 가 쓴 「지식의 귀환, 생명의 재탄생」("The Return of Knowledge, The Rebirth of Life")을 참조.
5: 웨스트버지니아 판본은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가장 훌륭한 판본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이들이 문체가 너무 현란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판본들도 모두 보기 위해서는 제이 추기경(Cardinal Jay) 담당 서지학자와 상담할 것.
장사치들에 관한 지식
옛날 옛적에 한 사내가 있어
차갑고 차가운 심장의 사내가
그는 애쓰고 또 애썼지만
일이 도통 시작조차 않는 거라!
그는 광산 속에 살았고,
큰소리치기를 “잘 들어라!
나는 밤에는 안에 있을 테다!”
하여 사람들이 그를 다크라고 불렀더라. 1
도서관은 스스로를 유한회사 마셜, 카터, 다크(Marshall, Carter, and Dark ltd.)라고 칭하는 장사치들(the Merchants)의 가장 최근 육신과 우호적인 관계을 지속하고 있다. 전대 장사치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장사치들은 소실된 문헌 몇 점의 사본을 대가로 옥리들 또는 미친 놈들의 소굴에 침투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회수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장사치들 쪽의 전면 파트너인 미스스터 마셜(Mssrs. Marchall)과 미스스터 카터(Mssrs. Carter)는 자신들이 이런 기관으로서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장사치들은 형태를 달리해 오면서 언제나 존재해왔다. 과거에 이들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 집심눔(Gypsimnum), 샤일록 지구, 검은 시장(the Black Market)들 역시 각자 자기들이 최초의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혁신이라는 게 이루어지는 방식이란 게 원래 다 이런 식이다.
세 번째 구성원인 미스터 다크(Mister Dark)는 많은 도서관 구성원들의 흥미의 대상이기도 하다. 은밀한 기부를 통하여 집심눔을 운영했던 다크와 샤일록 지구에 점포 여러 개를 굴리던 다크2와 이 다크가 모두 동일인이라는 말이 있고, 또한 그게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크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 역시 어리둥절하다. 도서관의 책들의 여백에 난외 언주가 적혀 있는 경우가 셀 수 없이 많은데,3 그 주석들을 단 사람은 스스로를 다크라고 서명했다.4 주석 내용은 무언가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상황에 관한 것인 경우가 많다. 각각의 상황에서 우리는 정보를 제공해준 대가로 현생의 장사치들로부터 괜찮은 용역을 제공받았고, 이런 거래는 대개 서로가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로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도서관 거류자들은 장사치들과 거래를 할 때 매우 주의할 것이 권장된다. 그들은 등가교환으로 만족하는 일이 드물다. 그런 흥정으로는 이윤을 남기기 어렵기 떄문이다.
그러세요, 그리폰 선생(Ser Gryphon).5 나 역시 그것을 염려하고 있으니. 도서관의 경비가 좀더 세심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이 문헌들을 엄한 데 쓰고자 하는 놈들의 손에 문헌들이 떨어지게 될까 그게 두려울 따름이죠.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 게, 한번은 그쪽의 미스터 디(Mister Dee)6와 보이니치 번역본을 읽다가 경비원이 제 때 있을 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지요. 그래도 격려의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겨우 몇 년 만에 동방 서고들의 문헌들을 모두 치우셔야 하니. 몇 년이면 그리 길지는 않지만, 충분히 긴 시간이죠.
이것의 대가로, 여러분이 제 동료들에게 정보를 동봉해서 넘겨주실 것이라 기대할게요.7 그리고 왕가 제3계곡에 대한 상세한 연구도 해 보시길. 8
여러분을 존경하는
미스스터 다크(Mssr. Dark), 1704년
1: 이 시는 『금전출납부』(The Ledger)라는 제목이 붙은, 백지로 된 책 속에 끼워진 채로 발견되었다. 미스터 요한 다크가 쓴 동시집 『성공을 위한 노래, 그럴듯하기 위한 싯구』(Songs for Success, Verse for Verisimilitude)에 포함되지 않은 단시인 것으로 생각된다. 요한 다크는 우리가 알기로는 1643년에 죽었다.
2: 보존서고들과 영수증을 통해 확인함.
3: 이 난외 언주들의 전체 목록에 관심이 있다면 4층 보손 동의 심령상무공예보존서고를 찾아가 볼 것.
4: 이 서명들은 각각 비전 및 심령의 수단인 것으로 완전히 확인되었다.
5: 그리폰은 도서관의 제5대 보존사이며 가장 오랫동안 근속한 보존사이다.
6: 존 디(John Dee) 박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디 박사는 도서관 거류민이 아니며, 도서관에 출입이 허락된 적도 없다.
7: 넘겨받은 정보는 십자가형에 대한 기독교 경전 구절과 다음 문장이었다. “E. I. Co., all in.”
8: 그리폰은 이 충고를 받아들여 동방동의 문헌들을 다른 데로 옮기고 동방동을 폐쇄했다. 그 직후 카이로 지하에서 두루마리들이 발견되었으며, 동방동은 그 두루마리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독실자들에 관한 지식
드리나이다!
드리나이다!
주님께 갈구드리나이다!
찾겠나이다!
고치겠나이다!
섬기겠나이다
우리의 주여! 1
독실자들(the Devout)은 어떤 신앙—부서진 신의 교단—을 따르는 종교집단의 구성원들이다. 현재 많은 도서관 거류민들이 이들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다.2 이 신앙심 깊은 이들은 세계 각지의 다양한 비전 집단들3 및 비전 수집가들4 사이에 흩어져 있는 유물들이 사실 어떤 신의 조각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그 존재를 재조립하고자 시도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 관한 도서관의 입장은 현재까지도 가열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존재가 한때 존재했다가 실제로 산산조각이 난 것인가, 아니면 예전엔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인데 그 관념이 연출되고 있는 것인가?5
이것이 논제이다. 예전에 존재했다는 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세상이 기능하기 위해 매우 필수적인 무언가에, 그 기능이 완전히 멈추어 버릴 정도의 일이 있으려면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지에 관한 가설을 세운다. 한편 그 설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 존재가 언젠가 미래에 출현하여 제작자들에게 과거의 제작 방법을 지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건 일곱째 참된 신앙6의 존재 가능성은 대부분의 거류민들에게 흥미로운 것이다. 「손」 역시 이 집단을 조심스럽게 주시하면서 나름의 답을 찾아 헤매고 있다.
“사실 정말 지켜보기 흥미롭다. 이것은 마치 그 옛날 천주교도들이 성령을 찬송하며 머리칼에 기름부음을 할 때 감람유 대신 기계 기름을 사용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것임을 느꼈다. 내가 이런 느낌을 받아본 것은 사막에서 무함마드의 모래를 밟았을 때 이래로 처음이고, 이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할 대상이라 주장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그 신의 기원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존재하고, 심지어 내가 그를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지탱하고, 모든 것을 보우하며, 이해심도 그럭저럭 깊다. 나는 더 알아야겠다.” –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티프 알 크라이데스(Mohammed bin Abdullahtif al Kraidees), 1998년 4월 17일 교신내역 7
1: 부서진 신의 교단의 어린이 기도서 『순수를 위한 사랑』(Love for the Pure)에서 발췌
2: 현재 서른 명 이상의 도서관 거류민들이 이 교단의 여러 분파와 종파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그들이 오고가는 내역을 거의 날짜별로 보고해오고 있다. 이 「손」의 눈과 귀들은 주기적으로 담당하는 종파를 돌아가며 바꾸기 때문에 공보자료의 이름들도 자주 바뀔 수 있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세심하게 교차참조를 할 것.
3: 현재 옥리들이 조각 몇 개를 소유하고 있다. 독실자들을 관찰함에 있어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조만간에 그 조각들 중 한두 개를 해방시키자는 제안이 이루어진 바 있다.
4: 독실자들의 신의 조각들 중 최소 하나를 현재 어느 수집가가 사유물로 가지고 있다는 강력함 심증이 있다. 그 수집가는 문제의 조각을 1989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사 갔다고 한다. 이 남자는 COG 라는 가명으로만 알려져 있다.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5: 더 상세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모하메드 알샤라나이(Mohammed Alsharanai)의 광범위한 저술 『신성의 분열』(The Sundering of Holiness)이나 하인리히 리히터(Heinrich Richter)의 짧은 논고 『초월적 전능』(Omnipotence Transcending)을 살펴볼 것.
6: 참된 신앙에 관하여서는 엘리엇 슈미트(Elliot Schmidt)의 『신앙에 관하여』(Upon Faith) 최신개정판(모르몬교에 관한 검토가 포함되어 있으며, 식인종교들에 관한 1644년판의 잘못된 정보들은 대폭 제거했음) 을 읽어볼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7: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티프 알 크라이데스는 이 날 이후로 흔적없이 사라져 그를 보았다는 이도, 들었다는 이도, 접촉하거나 예측했다는 이도 없다. 많은 이들은 그의 영혼이 이제 우리가 닿을 수 있는 영역 밖으로 가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는 「손」의 많은 구성원들이 충격과 불안을 느끼는 사실이기도 하다.
존재외에 대한 지식
이보게, 자네! 이보게 자네!
그대 이름이 어찌 되는가?
이리 오게 내가 그대 영혼을 홀짝이게
그러면 우리는 하나라 불리게 되리.
여보게, 싫다! 여보게, 싫다!
내 영혼은 오롯이 나만의 것인데!
너무 늦었다, 너무 늦었다, 작은 아이야
이제 내가 네 집에 살게 되었구나.1
세상에 실존하는(exists) 모든 것보다 더 오래 되었고, 더 위험하며, 더 끔찍한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실존한 바 없고, 실존하지 않을 것이며, 실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들은 실존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이 존재(being)들을 존재외(Neverwere)라고 부른다. 그들은 공간의 숨겨진 구석을 표류하며, 언제나 시야 밖에 있으면서, “잊혀진 이야기들, 잃어버린 서사시들, 버림받은 꿈들을 조립한다.”2
고대에는,3 「길」들이 밝고 분명하여 눈으로도 볼 수 있었고, 나무들은 여행자들이 각자의 세상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을 대가로 과실을 듬뿍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꿈들이 사라졌고,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은 잊혀졌으며, 심지어 자기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죽었다. 「길」들은 점점 더 어둡고 어두워졌고, 바로 그 때, 실존한 적 없음이 나타났고들 한다.4 어떤 이들은 실존한 적 없는 것들이 그저 명예로운 죽은 신들의 영혼이라면서, 다른 신들에게 구원을 청할 방법을 찾으려 했다.5 한편 다른 이들은 그들이 「길」에 의해 기본적 형상과 신체가 주어진 상상력의 허구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어쨌든 간에, 「길」의 여행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실존하지 않아야 할 존재들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천여 년 간 실존한 적 없는 것들 중 단 하나도 완전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서로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어떤 존재가 실존(existence)을 성취하면, 거의 그 즉시 동족에게 잡아먹힌다.
“자신의 실존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에 젖어, 다른 이들의 실존을 훔칠 지경에 이른 존재들. 「길」을 걷고자하는 이에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길」 속에서 길을 잃으면 거의 확실히 놈들의 주의를 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에게 다가온 누군가가 마치 캔버스 밖으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그림마냥 생생한 진짜처럼 보인다면, 도망쳐라.” — 할리스 캐버내치(Harliss Cabernatch), 『무한으로 가는 발소리들』(Footfalls to Infinity)6
1: 『도전과 양동이』(The Changeling and the Bucket, 1911년)에서 발췌.
2: 고대의 북쪽의 토르그(Thorg) 저, 『인간의 태초 전설과 다른 참된 신화들』(Legends of the Dawn of Man and Other True Myths)에서 발췌.
3: 에드윈 스미스(Edwin Smythe)가 세르펜티스 후브리디비디스(Serpentis Hubridibidis)라는 가명으로 쓴 그럴싸한 위서 『광막한 과거의 심상』(Visions of the Distant Past, 1972년)에서 묘사된 것과 같이.
4: 다양한 책들에 수천 번도 더 존재한 적 없는 것에 관한 언급이 이루어지지만, 그 중 대부분은 허구라고 봐야 할 것이다. 존재한 적 없는 것이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 이야기는 틀린 것으로 판단해도 된다. 학자들은 존재한 적 없는 것이 말을 하는 것은 자기가 이미 붙잡은 사람 뿐이라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5: 이것 및 비슷한 다른 주제에 관한 흥미로운 사례들은 N. 베나르도 말키(N. Bennardo Malki) 저 『무너진 신앙과 영원한 영혼』(Fallen Faiths and the Eternal Soul)을 참조할 것.
6: 할리스 캐버내치의 책은 미완성이지만, 여러 문헌에서 인용되는 것이 발견된다. 이 존재들에 관한 정보의 주요 출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무명자에 관한 지식
나는 왔다가 나는 가네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는 대로
너는 절대 알지 못하리
이 사리들이 얼마나 단단히 눌렸는지 1
도서관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에게 등을 돌린 이들은 불과 한 줌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최근의 사례가 우리의 전당에서 도망쳐 어디론가 숨어들어간 대배반자(Great Betrayer)라는 이름이 붙은 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언제나 맨 처음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인 법이다. 무명자(Nameless One)는 도서관을 배반했을 때 소규모의 생물체 병력을 이끌고 들어와 자기 주문으로써 도서관을 혼란에 빠뜨리고 가장 깊은 곳까지 쳐들어가려 시도했었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그는 구비와 주문 분야에 명망이 높은 학자였고, 도서관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 중 한 명이었다.
최초의 존재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그의 이름이 들어 있는 책들을 모두 열어 그 이름을 파내였고, 자신들을 비롯해 그 주변인 모두의 기억에서 그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그를 이름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자 그는 힘의 대부분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인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버텨냈고, 악착같이 자기 목적을 추구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즉 잊혀진 채로 두는 것이 가장 좋다. 그와 조우했을 경우 도주할 것을 권장한다.
“옛날에는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세 개 있었다고 한다.2 첫 번재 열쇠는 사서가 가지고 있었고, 다른 두 개는 가장 믿을 만한 이에게 주어, 「길」을 알고 있으나 환영받지 못하는 이가 드나들지 못하도록 문을 열고 잠그도록 하였다. 생물들의 기억이 이 비밀스러운 길들을 잊어버리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지식에 인색했으며 그 자신들의 피 속에 쓰여진 지식들을 똑똑히 기억할 수 없었다. 문들이 봉해져야 할 긴급한 상황에 대비하여 사서는 여전히 자기 열쇠를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열쇠는 옥리들이 가지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힘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해독 불능]3 세 번째 열쇠는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4” — 저자 미상, 『통로와 경로』(The Paths and the Ways)5
1: 이 싯구는 수 세기 동안 사용되지 않은 도서관 문의 안쪽에 새겨져 있었다. 문 자체는 봉해졌고, 몇달 뒤 다시 나타났다. 이것이 어떻게 발생한 현상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로서 싯구를 새겨놓은 것은 이름없는 자로 생각되고 있다.
2: 이 열쇠들은 비유적 표현인 것으로 생각된다. 물리적 열쇠에 관한 정보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옥리들이 가지고 있는” 열쇠가 순전히 비유적인 것인지, 물리적인 것인지, 아니면 정보의 형태일 뿐인지 여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3: 해당 부분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지워져 있다. 이 부분을 보는 사람은 글귀를 보기는 하지만 그 글귀는 흐려져 있거나 말이 되지 않으며, 독자마다 보이는 글귀도 다르다.
4: 흐려진 글귀는 언제나 이 문장으로 끝난다. 이 문장은 세심한 손글씨로 쓰여져 있다. 이 문장의 손글씨 필체와 문에 새겨진 싯구의 필체를 비교해 보았지만 양자는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5: 전통적으로 이 문헌의 원저자는 할리퀸이라고 한다. 할리퀸은 여전히 유명하며 다른 문헌들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찌꺼기에 관한 지식
우리는 사라졌고, 우리는 잊혀졌다.
옛 세계들의 주인이었던 우리가.
기도들과 추도들은 이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일 뿐.
한때 우리는 영광의 왕들이었으나,
이제 우리는 그저 기억에 지나지 않으니.
더 좋았던 시절의 찌꺼기들이라.1
다른 존재로 넘어가게 된 여러 세계의 신들, 방랑자들, 유랑자들의 그림자. 살아있는 악몽들과 잊혀진 신성들은 단일한 목적을 위해 서로 어울리게 된다. 바로 기억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것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삶, 신앙체계, 권능에 관한 책을 도서관에 넣으면 불멸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지만,2 대부분은 책을 쓰는 동안에도 점점 꺼져가게 되고, 책을 다 써서 도서관에 오면 이미 절박한 지경이 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3
이 존재들이 어느 시점에 모여 작은 군단을 이루었고,4 스스로를 찌꺼기들(the Remnants)이라고 불르면서,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를 신뢰할 것을 천명했다.5 오랫동안 죽었다고 여겨진 신이 도서관의 통로 사이를 떠돌면서, 한때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경전을 찾아다니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런 존재들이 보통 찌꺼기의 포섭 대상이 된다. 찌꺼기는 이들을 「길」들 너머의 어딘가 깊숙한 곳으로 데려가는데,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6
“그대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곳, 원하는 만큼 오래도록 살 수 있는 곳, 그대가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는 동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곳.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잊혀 버리지 않아도 된다. 어느 고고학자가 기도문을 암송해 보거나, 어느 어린아이가 신화 이야기책 속에서 그대의 이름을 찾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무덤 속에서 다시 나올 수 있으니. 우리가 그대를 기억하리라. 그대가 우리를 기억하는 한.” – 찌꺼기들의 사절 네르갈(Nergal)7
1: 이 글은 「길」 깊숙한 곳의 표지석에 새겨져 있었고, 강력한 정확도의 예언자인 소포틱 파르스크라이어(Sophotic Farscrier)가 발견했다. 파르스크라이어는 표지석의 방향을 따라 더 가 보려고 시도했다가 그 직후 영혼째로 사라져 버렸다.
2: 쓰여진 글보다 더 오래 가는 불멸의 존재가 무엇이란 말인가? — L.S.
3: 신들과 그 질료에 대한 탐구서로서 읽을 만한 문헌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건조하지만 상당히 정확한 불멸의 저서 『이슈타르의 날들』(Days of Ishtar)을 추천할 수 있다. 이 책은 메소포타미아의 사랑의 여신에 관한 놀라울 정도로 분석적인 일지다. 또한 생물종의 세대에 관한 탁월한 문헌이기도 하다.
4: 해당 모임에 여러 시간선이 교차하여 존재했기 때문에 그 정확한 날짜는 비정하기 어렵다.
5: 신에 대한 신앙이란 변덕스러운 것이나, 더이상 아무 세계에서도 열렬히 추종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시간을 견디고 계속 존재함은 추가적인 탐구를 계속할 만한 매력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6: 다른 방랑자들이 “신의 영역”이라고 부르는 곳을 찾기 위하여 많은 이들이 시도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얻은 이는 아무도 없다. 이런 모험가들과 수색가들의 모험담은 현재 서방동의 신성 서가에 수집되어 있다.
7: 여기서 네르갈이 부르고 있는 대상은 비라코차(Viracocha)였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그 그림자가 워낙 심하게 퇴색되어 정확히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까치들에 관한 지식
한 마리면 슬픔이 오고,
두 마리면 웃음이 오고,
세 마리면 장례를 치르고,
네 마리면 아이가 태어나고,
다섯 마리면 날개가 생기고,
여섯 마리면 부리가 생긴대,
일곱 마리면 비밀이 생기지,
절대 말해선 안 되는 비밀이.1
까치들(the Magpies)은 스스로를 “수집가들(Collectors)”이라고 부르며, 옥리들과 피상적인 유사점을 가진다. 옥리들보다 힘은 훨씬 떨어지지만, 「길」을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짜증나기로는 그들보다 더한 위협이다.2 까치들은 도서관 안으로 직접 들어와서 책이나 문서를 찾아다닌 적도 여러 번 있다. 드물지만, 방랑자들에게 접근하여 자기들이 찾는 물건을 구하는 것을 도우라고 강요할 때도 있다.3
현재 그들이 찾아다니는 것들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이유도 발견되지 않는다. 도서관을 드나들던 까치들 여럿을 붙잡았으나, 책이나 유물을 갖고 성공적으로 내뺀 까치들이 잡힌 까치들보다 훨씬 많다.4 예전에 이루어진 조사에서는 그들의 성질에 대해 이렇다할 밝혀진 것이 없었으나, 그들이 무엇이든 “반짝이는”것을 보기만 하면 그 가치에 상관없이 모두 주워가려는 것처럼 보이는 데서 착안하여 제2대 보존사5가 그들을 “까치”라고 이름붙였다. 현재로서 까치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성가신 골칫거리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까치들을 일컬을 때는 공손하되, 그렇다고 십자 긋기를 주저하지도 말아라. 그들에게 숙여 주어라. 만일 그들이 네게 걸어오거든 스스로를 꼬집어 보라. 그래서 꿈이 아니거든, 두 엄지손가락을 교차하여 들어올린 뒤 ‘더럽다, 더럽다, 썩 물러나라!’ 이렇게 세 번 말해라! 그리고 절대로, 절대로 그들이 너를 만지거나 네 집까지 따라오게 해서는 안 된다!” — 코르멜리안 니코데무스 샹크(Cormellian Nicodemus Shank)
1: 자장가 「까치 한 마리면 슬픔이」(“One for Sorrow”)의 가장 오래된 판본(1498년경).
2: 까치들은 자연적 수단을 넘나들며 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기작은 전혀 밝혀진 바 없다.
3: 까치들이 사람들을 시켜 부린 모험담에 관한 책 여러 권이 쓰인 바 있으며, 남방 심층동에 그런 책들의 전체 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4: 까치들이 훔쳐간 것으로 생각되는 책들의 전체 목록을 현임 보존사가 유지하고 있다.
5: 캐듀얼 메제리조(Caduale Mezerizo). 역대 보존사들 중 최단기 임기 보존사로, 처음 휴식을 허락받고 자다가 죽었다.
미친 놈들에 관한 지식
뒤틀리는 불들이 타올라
불타올라
불타올라
내 두눈이
불타올라
그들이 나를 불태워
억지로 듣게 하고
억지로 따르게 했어
나 좀 제발 살려줘1
미친 놈들(the Madmen)은 지난 세기 초엽에 「길」 위에 처음 나타났다. 도서관은 처음에는 그들을 예고된 새 방랑자들이라고 생각하고 환영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것이 실수였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놈들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고, 놈들이 옥리들과 얼마나 유사한 자들인지 알게 된 우리는 급히 서둘러서 놈들에게 빗장을 걸었다. 지금도 놈들은 어떤 알 수 없는 수단을 통해 길들을 돌아다니고 있고, 때때로 도서관에 다시 들어오려고도 시도한다. 지금까지 그런 시도가 두 차례 있었고, 두 차례 모두 상당한 피해를 일으켰다. 첫 번째 시도 때는 대화재 때 혼란을 틈타 기어들어오려 했었고, 두 번째 시도 때는 한 젊은 방랑자를 세뇌하고 생체해부하여 자기들에게 복종하게 만들어 이용했다.
현재 우리는 놈들의 동기나 목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놈들의 손아귀에서 구출된 이들은2 놈들을 불화의 파종기(Sowers of Discord)라거나 반란(The Insurgency)이라고 부른다. 놈들은 자기들도 그 결과를 다 예측하지 못하는 장치들과 도구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며, 살아있는 생물도 그 도구에 포함된다.3 이런 이유로, 미친 놈들을 가능한 한 모두 추적하여 놈들이 이상한 욕망을 위해 세상을 찢어 놓으려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나 알잖아, 엘리아스(Elias). 그 작은 아가씨를 그 놈이 묶어놓지만 않았어도 내가 그 놈을 그 때 그 자리에서 때려눕혔을 거라고! 그 놈은 여자를 질질 끌고는 물건들을 지켜보며 그것들이 죽거나 사라지거든 자기한테 말하라고 을러대고 있었고. 맹세하건대, 여자 목숨이 날아갈 판만 아니었어도, 난 그 자리에서 당장 그 놈을 때려눕혔을 테지만, 여자가 다칠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고. 절대! 절대 그럴 수 없었지!”
“내가 어쨌냐고? 음, 나는 ‘그 놈이 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지. 그러고 나서 주머니칼로 변신해서 여자 발 옆에 떨어졌고. 히히… 고 이쁜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바로 알아차리더군.”
— 코다니 우드(Cordany Wood)의 「미친 놈들은 피를 잘 흘린다」(“Madmen Bleed Better”)4
1: 이 싯구는 코다니 우드가 현재의 순서대로 배열한 것이다. 각각의 행은 구출된 미친 놈들의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들로서,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2: 이렇게 구출된 이들 중 다수는 현재 뱀의 손의 일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심신의 붕괴가 지나쳐 도저히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들 중 다수를 미친 놈들은 옥리들의 손에 넘기거나 또는 분서꾼들의 손을 빌어 죽였다. 옥리들의 위험성으로 인하여, 현재 구출 시도는 계획되어 있지 않다.
3: 흥미롭게도 미친 놈들은 고대 무기, 특히 그 중에서도 신의 도구나 신적 존재들의 신성기구의 사용을 즐기는 것 같다.
4: 우드의 이야기들은 구전으로 전해진 것이다. 우드 본인은 제3보존서고의 연설자들의 납골당에 머무르며, 이 이야기들을 모두 외워 들려줄 수 있다.
다에바에 관한 지식
일어서라! 우리의 길었던 잠은
이제 아스라히 먼 과거의 기억일
뿐. 우리를 가둔 자들을 쳐부술
것이며, 저들은 우리의 복수가
완수되었음을 알게 되리라!
도서관은 불탈 것이다! 책들은
잡아먹힐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 책들을 보살피는 위대하신
지킴이들의 심장으로 연회를 열리라.
종말이 다가온다. 그 때를 위하여
우리는 쓰여진다. 1
현실이 책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지극히 평범한 일이다. 예컨대, 기독교 수도사들은 베오울프를 자기네 장서관에 소장하기 위해 베오울프의 내용을 뜯어고쳤다.2 다에바(The Daeva)는 그것의 정반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언젠가에는 다에바들도 방랑자들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어떤 재앙이나 여타 이유로 망해 버린 별세계의 잔존자들의 부스러기 중 일부가 막 설립될 즈음의 도서관에 도달했고, 이는 주춧돌의 이야기로 증거된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그들은 책 한 권만 남긴 채 현실을 영원히 떠나 버렸다.3 불행히도 이것은 쉽게 또는 간단하게 확인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는 다에바인들의 성질 그 자체에서 기인한다.
다에바들은 스스로를 쓰는 과정을 계속하고 있는 한 텍스트 속을 점유하고 있다. 그 과정이 계속될 때마다 다른 책들에도 변화가 나타나지만,4 그 사건들 자체를 기억할 만큼 오래된 이들의 기억에는 나타나지 않는다.5 진정 어리둥절한 점은 다에바에 관한 글이 쓰여짐에 따라 역사 자체마저도 그에 맞추어 쓰여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증거의 존재다. 그런 고로 텍스트들이 그들을 별세계에서 온 방랑자라고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다에바에 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은 도서관에 대한 피의 복수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어쩌면 그들을 현재의 상태로 전락시킨 것이 이 곳의 마술일지 모른다는 가설이 제기된 바 있다. 다에바와 도서관 및 도서관 거류민들 사이의 전쟁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여러 문헌들이 출몰하고 있으며, 그 출몰 양태는 무작위적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전쟁들이 실존했다는 기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6 가장 귀살스러운 점은, 원본 텍스트가 완성되었을 때 이 모든 사건들이 일시에 현실에 존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뼈와 살과 먹물의 칼날들이 목을 가늘게 베어들어오자 수석보존사가 죽었다. 그의 두 눈만이 자신의 죽음을 목도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의 눈은 모두 멀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 존재의 두 눈이 다시 밝게 빛날 때, 그들 역시 칼날을 맞고 스러졌다. 하나씩 그들은 모두 무너졌고, 도서관 안에는 침묵만이 들어찼다. 그 때 두 손을 마주치는 손뼉소리가 들렸다. ‘그래 우리 다시 만났군.’” — 저자 미상, 『다에바들의 승리』(The Victory of the Daevas)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내용7
1: 저자 미상, 『다에바들의 전설』(The Legend of the Daeveas)의 명문.
2: 마틴 스와틀링(Martin Swartling)의 『별나라의 왕자』(The Prince of Starfellows)나 여호와(Jehova)의 『성경』(The Bible)의 사례도 생각해 보길.
3: 『다에바의 연대기』(A Chronicle of the Daevas)라는 책의 먼지 방지용 책싸개는 여전히 도서관에 남아 있지만, 책 자체는 오래 전에 분실되었다. 현재 장사치들 아니면 옥리들의 손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자의 경우 돈을 받고 팔라고 설득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목적이 알려질 경우 말도 안 되는 바가지를 씌울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옥리들이 범인일 경우, 그들로부터 책을 어떻게 되찾을 시도는 계획된 바 없다.
4: 각주들의 변화 및 갑자기 발생한 텍스트들의 목록 전체는 『다에바들의 유산』(Legacy of the Daevas)을 참조할 것. 해당 서적은 현재 안토니우스 튀폰(Antonius Typhon)이 유지보수 중.
5: 사카라무닝가(Scaramungia)와 이라드(Irad)는 둘 다 묘사된 내용에 관한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6: ‘그리폰 멱 따기’라거나 ‘신앙의 끝’이라고 불리는 사태들이 이 전투들에서 전환점이 된다고 기록된다. 그와 별개로 하지만 두 존재는 모두 각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7: 이 파편조각은 제1보존서고에서 불타 파손된 페이지 하나만 발견되었다. 책의 진짜 제목은 전혀 알 수 없으며, 이 제목은 발견자가 붙인 것이다. 추가적인 정보를 계속 찾고 있다.
아 거기 계시는군. 아마 지금은 이게 당신에게 필요한 전부일 거요. 당신을 겁주거나, 협박하거나, 멈추게 만드는 다른 무리들을 찾는다면, 당신이 직접 세밀하게 연구해볼 것임을 신뢰하겠소. 만약 당신이 통곡의 도시나 돌의 책들(Stone Books) 같은 것들에 관한 진짜 지식, 무언가 깊고 중요한 지식을 알고 싶다면, 아주 기쁘게 대답해줄 테요. 그런 것들이야말로 흥미의 대상이니까. 이런 사소한 것들은 내게 어울리는 일일 수가 없고, 이딴 것들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나는 즐기지 않는단 말요.
그럼 이만,
—제7대 도서관 수석보존사 예리코 베날시(Jericho Benal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