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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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보통 한여름 장마철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어느 하루는 비가 쏟아지고, 다른 날엔 맑아지는 듯하더니 또다시 금세 소나기가 내린다. 장마철은 그런 계절이고, 장마의 하늘은 우산을 잊어버린 사람들의 어깨를 무감각하게 적신다. 그럴 땐 사람들은 내려오는 빗방울을 쳐다보며 다양한 생각을 하지만, 우산을 잊은 사람들의 생각은 보통 비슷한 법이다. 당황.

그날은 나도 당황하고 있었다. 길을 떠돌던 사이, 하늘을 쳐다볼 여유도 없이 내려보던 바닥엔 어느샌가 검은 자국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고, 그제야 나는 고개를 들고 당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주위엔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할만한 곳이 없었고, 나뭇잎 사이사이로 하늘이 비춰 보이는 나무 그늘 아래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을 찾아서 뛰어가기에는 너무 지쳤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채 알지 못했다.

나무 아래에 숨고 나서야 바닥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나뭇잎 천장이 비를 막아주길 기대하는 것은 꽤나 너무한 요구 같았다. 다시 고개를 낮추고 — 이번엔 바닥까지 낮추진 않았다. — 주위를 둘러보자 보이는 것은 나무 한 그루와 뻗어있는 길, 비어있는 땅들, 그리고 한 명의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하나둘씩 떨어지는 물방울에는 관심 없다는 표정을 한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조금 맞지 않아 보이게 큰 옷자락이 흔들렸고, 꽤나 긴 머리칼이 살짝 흩날렸다. 경쾌하게 걷는 모습에, 왼손에 한 권의 책을 든 모습이 보였다. 척 보기에도 꽤나 어려 보였고, 아마 내 나이와 비슷할 것 같았다.

힘차게 나아가던 발걸음은 나무 앞에 다다랐다. 그 앞에서 발걸음은 조금씩 세차게 내려오는 빗줄기를 깨닫곤 멈춰 섰다.

발걸음은 멈춰선 그녀는 이내, 무언가를 잡은 것처럼 오른손을 쥐고는 엄지가 위를 향하게 손목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에게 내리던 빗방울은 그녀의 머리 위 허공에서 그녀에게 닿지 못한 채 튕겨져 나갔다. 다음 빗방울도 마찬가지였고 빗방울이 튕겨져 나간 자리엔 조그마한 물방울이 맺혔다. 허공에 맺힌 빗방울은 다른 물방울들과 합쳐지더니 이내 아래로 흘러내려 갔다. 바닥에 떨어질 것처럼 미끄러지던 물방울은 그러기 전에 스며들듯 조금 가라앉더니 틀에 채워진 듯 새로운 모양을 만들었다. 그런 물방울들이 모이고, 더 이상 방울이 아니게 되었을 때, 소나기는 8개의 살대가 되고 얇게 펴져서 그녀의 머리 위를 덮었고 물이 가장 위까지 차오르자 똑바르게 아래로 흘러내리더니, 가장 아래에 도착하자 다시 휘어져 올라가 손잡이가 되었고, 결국엔 투명하게 빛나는 우산이 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완성된 투명한 우산을 어깨에 걸치곤 다시 이전의 힘찬 발걸음으로 나무를 향해 다가왔고, 이렇게 물었다.


"같이 쓰실래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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