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시라보 제공 「결정은 신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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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이 단상 왼쪽에서 걸어 나와 중앙에 있는 베개에 앉아 관객들을 마주한다. 그는 눈을 감는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질문은 모든 시간, 모든 시대를 통틀어 많은 사람들의 골치를 썩혀 왔습니다. 우리가 알 수가 없으니, 궁금증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인간의 본성이라고나 할까요. 내가 저 낯선 이에게 밉보였으면 어쩌지? 내가 친구를 행복하게 만든 걸까? 부모님은 이런 나를 자랑스러워 하실까? 질문들은 계속 쌓여가지만, 결코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죠."

"하지만, 만약,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야기꾼이 눈을 뜬다.

"이것은 아버지의 경야에 늦어버린 소녀 사치Sachi의 이야기입니다."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괜찮아. 괜찮단다. 네 잘못도 아니잖니?"




오빠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치는 자신의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오빠는 실망한 기색이 역려했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치가 경야에 제 시간에 오기만 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테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사치가 이 일에 대해 일 엔이라도 내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소한 일 하나조차도 제대로 못했죠. 만약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당장 자신을 꾸짖었을 것이라고, 사치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빠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 작은 차이와 사치. 이 작은 망할 차이.




한숨

"동생아, 보렴. 네가 진정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야. 그리고 아마 그 편이 죄책감을 더는데 나을 거다."




"아버지에게?"


"그래. 네가 늦어서 기다린 건 아버지시잖니? 아버지 장례식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니 아버지께 가서 뭐라도 말씀 드리렴. 적어도 가서 뵙기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니?"




오빠는 이 말을 남기고는 섬세한 마룻바닥을 따라 사박 사박 걸어가 버렸습니다. 사치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못된 짓을 한 아이가 느끼는, 당황스러움과 수치심 이라고 할까요.

사치는 못된 아이였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랬죠. 하지만 사치는 아버지와 거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오빠의 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장례식이었지, 사치를 위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사치는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가서, 마지막으로 실망시킨 것에 대해 사과해야 했습니다.


사치는 철커덩 소리를 내며 장례식장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사치가 있는 곳의 반대쪽, 그 방의 끝 쪽에는, 꽃과 촛불로 둘러싸인…

관이 있었죠.

살금


살금


살금


사치는 끝없이 길게 놓인 빈 의자 행렬을 지나, 다소 의기소침한 걸음걸이로 아버지에게 향했습니다. 일 분 일 초가 마치 한 시간처럼 느껴졌죠. 하지만 도착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빠…"





"오랜만이에요. 이렇게 대화 하는 게 거의 10년 만이네요. 다른 곳이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전화라도 할 수 있었잖아요. 안 그래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빠는 입을 다무셨죠. 대학에 붙어도 축하 한마디 없으셨고, 자퇴했을 때 뭐라고 하시지도 않았잖아요. 우리를 만나러 오지도 않으셨고. 그냥, 계속 일만 하셨죠. 그동안 몇 번 만나기나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 여기 오면서 어떻게 해야 편하게 보내드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임종을 지키면서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 정신을 차려 보니 같은 곳을 뱅뱅 돌면서 운전하고 있더라고요. 그냥, 그 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아빠, 그리고 내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 오빠, 그리고 내가 있든 말든 신경 안 쓰는 아빠 형제자매들, 그리고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새 엄마랑 실갱이하기 싫었거든요. 겨우 이러려고 십일 년, 십이 년간 이 짓을 해오신 거예요? 왜 그냥… 등에 지워진 짐을 던져버리지 못한 거죠?"










한숨

"무슨 생각을 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그게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나요?… 아빠에게만 최선이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치는 후련함과 패배감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며 관에 머리를 기댔습니다. 자신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오래 전에 죽은 고인의 텅 빈 귓속에 울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 같은 부모들에게 익숙한 어린 아이처럼, 다 쏟아내는 것.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으니까요. 잠시 동안 고요한 정적이 방 안을 감돌았습니다. 사치는 그 달콤하고도, 씁쓸한 침묵을 음미했습니다.

떠날 준비를 하고 돌아섰을 때, 사치는 문이 닫혀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들어올 분명히 열어두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설마, 사치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말다툼 하는 동안 누가 몰래 훔쳐본 것일까요? 아마도 오빠였을 것입니다. 사치는 이 상황을 오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오빠가 자신이 본 것을 뭐라 생각할지도 궁금했죠. 그 순간, 갑자기 방의 촛불이 하고 꺼져 버렸습니다. 동시에 삐그으더억 하는 소리가 들렸고 사치가 뭘 하기도 전에 관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네 아버지는 부끄러웠던 거다. 그럴 수밖에. 너와 네 오빠는 언제나 어머니를 무척 사랑했지. 그런데 네 아버지가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속마음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기? 아무도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아니, 지금까지는 그랬지.”




"으, 으에? 누, 누구세요?"











”아, 정중히 사과하지. 놀라게 하려는 건 아니었다.”


Satori


”나는 사토, 너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다. 네가 고통 받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나 얘야, 그건 옳지 않다. 장례식장이 고통스러운 장소이기는 하지만, 네 고통은 슬픔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무언가에 대한 불안이었다. 그러니, 이 무력한 순간에 내가 너를 도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겠는가? 나는 네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신성한 귀를 허락해줄 수 있다."




"어, 그, 그건…"




사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모습은 너무나 끔찍했지만… 그래도 해코지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자 진정하고, 사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나를 믿지 않는다 하여도 이해한다. 그저 너를 도우려 했을 뿐이었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면 이만 떠나겠노라."



그것은 재빠르게 그림자로 스며들었습니다. 불이 다시 들어왔고, 쉬익 소리와 함께 촛불도 다시 켜졌죠. 신은 곧 사라져버렸습니다.




"자, 잠깐만요!"


하지만 너무 늦었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몇 주가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사치, 잠깐 이리로 와 보겠니"




"네, 사장님."


"혹시 이게 뭔지 알겠니?"




"어… 음료 매대 말씀이신가요?"


"그래, 음료 매대지. 근데 여길 봐라."






텅 빈 음료 캔들과 다 먹은 과자 봉지들.






"… 아."


"'아'가 아니잖아. 굳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진 않겠다만… 그냥, 사람들이 물건 안 훔쳐가게 잘 좀 지켜라, 응?"




"넵, 사장님."




문득 스치는 질문은 없으신가요? 오늘 밤 뒤척이지 않으려면 물어봐야 하는 그런 질문 말입니다 .






"혹시 제 월급에서 까일까요?"


한숨
"앞으로 네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 이번 일이 좋게 기억될 것 같지는 않다만, 네가 열심히 일 하고, 평소에 잘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런 일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겠니?"
당연히 네 월급에서 까이지. 너 진짜 바보냐?




"뭐, 뭐라고요?…"


"왜 그러니?"




"어, 음,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된 것 같구나. 다시 일하러 가자."
이상하군




"… 넵."








… 그래, 이름이 뭐라고 했었죠? 사…사토? 그 비슷한 거였는데…



”그래, 나는 사토다.”

"끄아! 까…깜짝이야?!"



”뭘 그리 놀라니, 얘야? 네가 내 이름을 부르길래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 그게… 일하다가 사장님 생각이 들렸는데 그게 어떻게… 저도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이상한 일 이라고는 예전에 장례식장에 갔을 때 당신이 나타났을… 때 뿐이었어서, 그래서….



”합리적 추론이다. 아버지의 경야가 있던 날에 만났던 감정적인 꼬맹이와는 좀 다르군.”

”그래도, 그 감정이 나를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래, 내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었느냐?”


설마 사치가 사장의 속마음을 알고 싶었던 일 때문에 이 신이 다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나타난 것일까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치는 사장이 겉으로 속이는 친근한 태도와는 다르게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로 생각하고, 경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거짓된 모습이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죠. 그러나 오히려 그 편이 마음 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들의 속마음을 알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었죠.


”당연히 그런 의미는 아니지. 네가 신성한 귀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내 관대하게 맛보기를 제공해준 것이니라. 이제는 내 선물을 받을 지 결정할 수 있을 게다. 지난번에 의심하고 차분히 결정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더냐?

이제는 당연하게도, 사토는 사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죠? 제게… 무슨 능력이 생기나요?"



”그 답은 너만이 알게다.”




"제 생각을 읽으실 수 있잖아요?"



”아, 그렇지만 갈등 하는 자의 마음에서 답을 알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사토의 말도 일리가 있군요.


”당연히 일리가 있지.”



쳇.




"음… 좋아요. 도움을 받아볼게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요. 오빠랑 가족이랑 제 동료랑 친구랑 다른 사람들, 그리고 생각 있는 모두 다. 이게 당신이 제게 주려던 선물 맞죠?"



”그렇다. 바로 그것이 내가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너에게 내리겠노라. 잠시 눈을 감도록 하여라. 사치, 눈을 떴을 때는 인생이 새롭게 바뀌어있을 거다.”






사치는 이게 정말로 좋은 생각일까 생각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겉모습은 무서웠지만, 사치는 사토의 목소리를 들으면 안심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도우려는 사람을 의심할 수는 없었죠.


키히히



"음?"


사치는 눈을 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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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 사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좀 복잡하군요. 뇌경색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는 하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혹시 가족 중에 발작을 일으킨 분이 있었나요?"

도와줘




"아뇨… 없는 것 같습니다."

도와줘



"알겠습니다. 다른 검사들도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차도가 있으면 다시 연락 드리겠습-"

도와줘




"그럼 사치는 괜찮은 건가요? 뭐든 말씀해주세요."

제발 도와줘



"사치는 안정된 상태입니다. 음향 신호에도 반응했습니다. 그렇지만…"
제발




"…그렇지만?"
비명들


"죄송합니다. 더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군요.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 비명들이라도 들리지 않게 해줘









제발




***




이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끝납니다.

이야기꾼이 청중을 향해 두 번 인사하고는 옷을 털며 조심스럽게 일어선다. 마침내 연극이 끝났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울림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만약 이야기에 나온 것과 비슷한 상황을 겪으신 적이 있다면 더 잘 아실 테고,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아시면 되겠죠.

이야기꾼이 마지막으로 사토리 가면을 쓴다.

Satori


”악마의 말은 듣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악마들은 너를 집어삼키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테니까! 키히히히히!”






이야기꾼이 가면을 내려놓고, 한번 더 인사한다. 그러고는 무대 오른쪽으로 걸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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